역사의 역사 - 역사를 어떻게 공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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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서평

이 책은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부터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역서서를 서술한 15명의 인물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유시민 작가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어려운 역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다만, 여기에 소개된 역사서 중에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만 정독한 적이 있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역사서들은 양도 많고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자주 읽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역사의 매력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감정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사의 매력은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데 있음을 거듭 절감했다." 


역사는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밝히는 지도가 된다고 한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시대에 반영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현대 사회에서 이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밑줄 긋기

- 서구 역사의 창시자,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

누가 처음으로 역사를 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서구 지식인들은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한다. 

여기서 서구는 서유럽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와 북아메리카, 호주를 포함하여 기독교를 문화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문명권을 통칭한다. 

그에게 이 명예로운 작위르르 수여한 인물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였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정치가로 활동했던 지식인 키케로는 헤로도토스가 B.C. 425년 무렵에 쓴 "역사"를 최초의 역사서로 본 것이다. 


- 사마천이 그린 인간과 권력과 시대의 풍경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하나의 전쟁을 다루었지만, 

사마천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 크고 작은 국가의 흥망, 다양한 사회 제도의 특성과 변화, 자기만의 색깔로 살다 죽은 개인들의 생애, 

전설과 신화의 시대에서 한 왕조에 이르는 수천 년 중국 사회의 역사 전체를 입체로 재구성했다. 

사기는 인간과 권력의 관계를 밑그림 삼아 시대와 문명을 그려 낸 거대한 풍경화였다. 


- 이븐 할둔, 최초의 인류사를 쓰다

2부의 핵심은 '아싸비야' 이론이다. 

아싸비야는 어떤 집단 내부에 형성되는 유대감, 연대 의식, 집단의식을 말하는데, 할둔은 그것이 혈연관계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할둔의 이론을 요약하면, 부족 안에서는 아싸비야가 강한 씨족이 리더십을 가지고, 

여러 부족이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아싸비야가 강한 부족이 권력을 장악한다. 


14세기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문명의 지식인들은 국가 권력의 존재 의미, 군주와 백성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거의 동일한 윤리적 규범을 만들어 냈다. 

무엇이 모든 문명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최소한의 윤리를 만들어내는가? 

바로 사피엔스의 본성이다. 


-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 랑케

지독히 재미없게 글을 썼던 랑케가 '역사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학문적 업적이지만 다른 하나는 치명적이고 중대한 인식의 오류다. 

랑케의 업적은 오류 덕분에 빛나며, 오류는 업적 때문에 돋보인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 역사학은 그가 이룬 업적의 토대 위에서 그가 저지른 오류를 극복하면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웠다. 


-- 역사를 비껴간 마르크스의 역사법칙

유물사관의 방법론은 '변증법'이다. 

변증법의 의미는 다른 개념들이 흔히 그렇듯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졌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대화와 문답을 통해 진리를 찾는 방법이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논리학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변증법이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이는 관념론 철학자 헤겔이었다. 

헤겔은 세계의 역사를 '절대이성' 또는 '세계정신'이 스스로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역사를 단 하나의 일관성 있는 진화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은 헤겔의 사상에서 유래했으며 마르크스가 상식으로 만들었다. 

두 사상가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 사회는 노예 제도와 자급자족 농업에 기초한 단순한 부족 사회에서 

여러 종류의 신권 제도, 군주 제도, 봉건적인 귀족 제도를 거쳐 자유민주주의와 기술 본위의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일관성있게 발전했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인간 사회의 진화가 한없이 계속되는 게 아니라 

인류가 가장 심오하고 근본적인 동경을 충족해 주는 사회를 실현했을 때 종말을 맞으리라고 믿었다. 

둘 모두 '역사의 종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인간 사회의 진화의 종말은 더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역사의 근거를 이루는 여러 원리나 제도가 더는 진보하거나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 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 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 에드워드, H. 카의 역사가 된 역사 이론서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만약 아무것도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실인지 역사가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문명의 역사,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

비창조적 다수자가 창조적 소수자를 모방하고 따르는 현상을 '미메시스'라고 한다. 

그리스어 미메시스는 '모방' 또는 '재현'이라는 뜻이다. 

창조적 소수자가 미메시스를 창출하면 사회는 응전에 성공하고 문명은 성장한다. 

반면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력을 상실하면 비창조적 다수가 미메시스를 철회하는데, 이런 과정을 '네메시스'라고 한다. 

네메시스는 '화를 내며 비난'한다는 뜻이다.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력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하면, 

다수자는 미메시스를 철회하고 면종복배하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와 폭력으로 맞서는 '외적 프롤레타리아트'로 분화하며, 

사회는 응전 능력을 잃고 혼란에 빠지며 문명은 쇠퇴한다 


-- 다이아몬드와 하라리, 역사와 과학을 통합하다. 

"총균쇠"는 역사학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과학자의 역사책이고, 

"사피엔스"는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최대한 받아들인 역사학자의 역사책이다. 

닮았으면서도 다른 구석이 많은 두 책은 짝을 이루어 서로 부르고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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