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 가장 위대한 공식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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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서평

10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전기가 아닌, 공식 E=mc2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인 것처럼, 

탄생, 초창기, 성년기로 나누어서 소설처럼 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었으나 

물리학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10년 전과 별 차이는 없는 듯 하다. 


다만,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상상력과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과학적 사고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왜? 그럴까? 하고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상상력을 발휘해 가설을 세우고 현상을 관찰하거나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 나가는 것 같다.   


기존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번쯤 다른 방법이 없는 지 생각해보려는 노력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호기심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간은 진리와 인생 그리고 불가사의한 현실의 구조를 직시할 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곤 한다. 

그저 매일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로 족하다. 신성한 호기심을 잃어서는 결코 안 된다.


하나의 목적에 자신의 온 힘과 정신을 다해 몰두하는 사람만이 진정 탁월한 사람이다. 

이런 까닭에 탁월해지는 데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요구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미니 정리


1부 탄생


1. 1905년, 베른 특허국 사무실

1905년은 아인슈타인이 일련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우주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완전히 바꿔놓은 해이다.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물리학 퀴즈에 관심이 많았고, 학점은 6점 만점에 4.96으로 평균에 속했다. 


아인슈타인의 불순한 행동은 교사들을 화나게 만들었는데, 

그 중 고등학교 때의 희랍어 문법 교사 요제프 데겐하르트는 아인슈타인에게 "넌 결코 아무것도 될 수 없을거야!"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영원히 역사책에 기록되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대여섯 주 만에 38장의 논문 초안을 완성했다. 

그 논문이 바로 상대성 이론의 시작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한 친구에게 자신의 이론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 착상이 재미있고 매혹적이지만 주님이 나를 골탕먹이면서 그걸 비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논문은 매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시작된다. 


2부  E=mc2의 조상들


2. E 에너지

에너지의 개념이 도입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마이클 패러데이이다. 

패러데이를 포함한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이제는 형태를 바꾼 에너지의 모든 변화량까지도 계산하고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측정 결과는 항상 같았다. 에너지의 총합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즉, 에너지는 보존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알려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멋진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3. = 등호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중요한 인쇄 부호의 대부분은 중세 말기에 정립된 것이다. 

"같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그 당시의 표기들은 다음과 같다. 

e || mc2

e → mc2

e ][ mc2


4. m 질량

과학자들이 물질들 사이에 중대한 연계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데는 아이작 뉴턴의 영향이 컸다. 

이후, 라부아지에는 금속이 연소하거나 녹스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무게를 재보았다. 

가벼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게는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공기 중의 산소가 금속에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측정해 보면 공기의 무게가 줄어들었고, 그것은 금속 조각의 증가한 무게와 정확히 일치한다.)


라부아지에는 극도로 정밀한 저울을 사용해서 물질은 형태가 변할 수 있으나 존재 자체가 생겨나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발견은 1700년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취의 하나이며, 

반세기 후 영국 왕립 과학 연구소 지하실에서 패러데이가 발견했던 에너지의 개념에 필적할 만한 것이었다.  


5. c 속도

갈릴레오는 빛의 속도를 측정하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두 사람이 1.6킬로미터 떨어진 언덕에 서서 빛이 골짜기를 통과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갈릴레오는 빠른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한 정밀한 시간 측정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실제 빛의 속도는 덴마크 청년인 뢰머가 목성의 위성 '이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측정했다.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도를 이용해서 에너지와 질량을 연결시킨 것은 실로 놀라운 통찰이었다. 


6. 2 제곱

여성 과학자 샤틀레는 라이프니츠의 이론인 속도의 제곱을 발전시켰고 네덜란드 과학자의 실험 결과를 통해 검증하였다. 

놋쇠공을 전보다 2배 빨리 내려치면, 진흙 속에 4배 깊이 박히고, 3배 빠르게 내려치면 9배 깊이 박혔다. 


3부 초창기


7. 아인슈타인과 공식

'질량과 에너지는 하나다'. 아인슈타인의 이 비범한 통찰은 아무도 빛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하는, 

표면적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상대성 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점점 멀어지는 어떤 물체를 보는 사람에게 그 물체는 질량 증가와 길이 변화, 시간 지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그러한 현상을 차 안에서 볼 것이고, 뒤를 돌아보는 그 차의 운전사는 구경꾼들에게서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단지 실생활에서는 670,000,000mph라는 빛의 속도와 근접하게 접촉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8. 원자 속으로

원자의 중심에는 핵이라고 불리는 아주 미세한 점 하나가 있었다. 

원자는 다량의 전기를 보유하는데, 그 중 반은 멀리 떨어진 전자의 궤도에 널리 흩어져 있었고, 

나머지 반은 중앙의 핵 속에 채워져 있었다. 

핵 속의 어떤 물질이 그 모든 전기를 안으로 잡아당기고, 그것이 꿈틀거리며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말하는 숨겨진 에너지의 저장소일 것이다. 


러더퍼드의 조교였던 제임스 채드윅은 핵속의 또 다른 물질인 중성자를 발견하였다. 

중성자의 전하가 중성이기 때문에 핵 속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고, 핵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알아내기 위한 탐사 침으로도 이용될 수 있었다. 

패르미는 중성자를 물에 통과시켜 속도를 줄이면서 핵 속으로 중성자를 집어넣는데 성공했다. 


9. 눈 덮인 한낮의 적막 속에서 

핵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낸 사람은 오스트라이 여성 리제 마이트너였다. 

그녀와 그녀의 조카는 눈 덮인 한낮의 적막 속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우라늄 원자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전력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 그저 여분의 중성자만 투입하면 된다. 

그러면 그 원자 핵은 진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진동은 점점 격렬해져서, 핵을 유지하고 있던 강한 힘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고, 

원자 핵 내부의 전하는 파편들을 빠른 속도로 흩어지게 한다. 이것이 우라늄 핵 폭발이다. 

이 폭발은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4부 성장기


10. 독일의 차례

아인슈타인은 마이트너의 연구 성과와 그 결과들을 다른 과학자들이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거절당한다. 

독일은 양자역학과 불확정성 원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해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핵무기에 대한 본격 연구에 들어간다. 

하이젠베르크는 수십 킬로그램의 우라늄을 체코슬로바키아 광산으로부터 얻어내고, 

페르미의 중성자 연구를 기반으로 고속 중성자의 속도를 낮추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중수를 사용했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자와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을 축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최강의 대학 연구진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작 자체가 미국보다 앞서 있었다.  


11. 노르웨이

영국은 중수 공장이 있는 노르웨이 베모르크에 있는 공장을 2번의 시도 끝에 폭파시킨다, 

초기 중성자의 속도가 우라늄 연료를 점화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낮아지도록 조절하는 중수는 

독일이 만든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마지막 요소였다.

노르웨이 공장의 폭파로 독일은 중수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되고, 독일보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먼저 제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2. 미국의 차례

폭파 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시간을 벌게 된다.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의 전체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를 통해 원자폭탄의 제조에 성공한다. 

(컴퓨터 탄생에 기여한 헝가리의 폰 노이만도 이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13. 오전 8시 16분, 일본 상공

안정판이 붙어 있는 긴 쓰레기통처럼 생긴 폭탄이 B-29로부터 투하되어 

소리를 내고 자전을 하면서 낙하하는 데는 43초가 걸렸다,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 솟아오르면서, 지구상에서 E=mc2의 첫 번째 임무가 끝났다.


5부 시간의 끝까지


14. 태양의 불꽃

E=mc2을 지구에만 한정하지 않고 우주 세계로 확장시킨 과학자는 세실리아 페인이라는 젊은 영국 여성이었다. 

그녀는 태양과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태양이 철(iron)로 이루어졌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 

t h e y s a i d i r o n a g a i e n  

예를 들면, 위 스펙트럼에서 수소(hydrogen)로 읽을 수 있는 것을 을 모두 철(iron)로 읽었던 것이다.  

그녀의 연구는 태양의 연소를 설명하기 위해 E=mc2을 적용해 내는 길을 열었다. 


15. 지구의 탄생

세실리아 페인의 연구는 태양을 포함한 모든 별들이 E=mc2의 거대한 활동 무대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수소 연소만으로는 아무런 생명체도 없는 죽은 우주가 될 수 있었다. 

호일은 원자폭탄에을 통해 얻은 착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각각의 연소 단계 - 처음에 수소, 다음엔 헬륨, 그 다음엔 탄소 - 는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그 힘을 얻게 된다. 

이 덩어리들이 폭발하면서 지구상의 물질을 생성해내는 원소들, 즉 규소, 철, 심지어 산소까지 분출하게 된다. 


E=mc2은 원자력 발전소, 연기 탐지기, 비상구 표시등, 병원 PET(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탄소 연대 측정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16. 브라만 청년, 하늘을 바라보다. 

브라만 계급의 인도 청년 찬드라세카르는 태양의 소멸에 대한 통찰에서 블랙홀의 현대적 개념을 정립하는 가설을 세웠다. 

E=mc2은 원자의 세계에서 거대한 우주로 나아가 그 생성과 소멸을 푸는 열쇠가 되었다.


에필로그 - 아인슈타인의 또다른 업적

아인슈타인은 1905년 E=mc2을 세상에 내놓고 한 걸음 더 나아가 1907년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다.

이로써 그는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 우뚝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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