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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 10점
법륜 지음/정토출판

통독: 2014.03.16 ~ 2014.04.19

비록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통해 법전을 처음 접해봤다.

금강경 자체는 어려웠지만 법륜 스님의 상세한 해석들을 보면서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상에 대한 집착이다. 

나도 현재까지 주관적인 관점에서 상을 만들고 그것에 집착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소신이라고 믿는 각자의 편견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편견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끊임없이 분별하면서 번뇌를 읽으키고 괴로워합니다. 


상에 집착해 실상을 보지 못하고 진실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받는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 속에서 진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 모두가 우러러보는 사람의 말일지라도 그릇된 견해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하나를 가져가면 누군가는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존재하고

현재 가진 것에 대해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사라질 때 불행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진정 행복한 삶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우선 지금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 주관과 시비를 내려놓고,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피고 인정할 때 진실의 문이 열립니다. 


상황은 이미 일어났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명제입니다. 

'나는 저 사람과 맞지 않아' 하고 고집하는 마음은 불행을 자초합니다. 

세상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와도 맞추어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없어지는 순간 삶은 곧장 불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 위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만큼 행복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 행복한 만큼 불행한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밑줄긋기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은 과거로부터 구도심을 일으켜 열심히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해온 사람을 말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을 말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가장 높고 보편타당한 진리인 무상정등정각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보리심입니다. 


상이란 나다/너다, 깨끗하다/더럽다, 좋다/나쁘다 등등 마음에서 일으켜 모양 지은 관념을 말합니다. 

생각으로 지었지만 마치 실제하는 것처럼 모양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아에 대한 개념을 아상이라 한다면 영혼에 대한 개념을 인상,

존재에 대한 개념을 중생상, 생명에 대한 개념을 수자상이라 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의 범위를 구분 짓는 경계에 따라서 

나와 너를 구별하는 아상,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하는 인상, 생명과 무생명을 구별하는 중생상, 

존재와 비존재를 구별하는 수자상으로 분류하기도합니다.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다' 할 때의 복은 재물이나 권력, 명예나 건강 같은 세속적인 복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인과법칙을 잘 믿고 잘 알아서 복을 짓고 복을 받는 자를 말합니다. 

나아가 구하는 바가 없으니 부족함이 없고,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버림으로써 증오와 미움이 사라진 마음에서 오는 복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는 진리를 따라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렇게 땅 밑의 지옥 아귀로부터 축생, 수라, 인간, 28개의 천상까지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이를 삼계라 합니다. 

이런 하나의 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이 소천세계, 소천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이 중천세계, 

중천세계가 천 개 모인 것이 대천세계입니다. 

소천,중천,대천세계를 통틀어 삼천대천세계라 부르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우주라고 말하는 영역입니다. 


사구게란 본래 네 개의 구절로 이루어진 계송을 뜻하지만 흔히 경전의 핵심 내용을 함축한 구절을 말합니다. 

사구게를 수지한다는 말은 금강경을 손으로 받아서 늘 가지고 다닌다는 말이 아닙니다. 

수지란 사구계에 담긴 소식을 듣고 '아, 그렇구나!'하고 깨달아서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소신이라고 믿는 각자의 편견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편견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끊임없이 분별하면서 번뇌를 읽으키고 괴로워합니다. 

마치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서 제 눈에 보이는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의 세상이 옳다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이 중생계라면, 저마다 끼고 있던 색안경을 벗는 것이 장엄이고,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게 되는 세상이 불국토입니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슬프고 외로운 마음으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금강경을 읽고는 

'이 마음은 다 꿈같은 것이다'하고 깨닫게 되었다면 그것이 '독'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경전을 읽고 깨쳤어도 책장을 덮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또 경전을 외워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돌이키며 실천하는 것을 '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지 독송이라 말합니다. 


우선 지금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 주관과 시비를 내려놓고,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피고 인정할 때 진실의 문이 열립니다. 

그 사실이 내 도덕적 기준에 합당한지 아닌지는 그 다음 일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먼저고 합당함을 살피는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이 순서를 뒤집어서 이미 일어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맞춰 상대를 바라보는 데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도 마음이 상하고 상대도 상처를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지나간 과거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도 지금 이 순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현재를 놓치며 삽니다. 

과거를 생각하다 현재를 놓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또 현재를 놓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현재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면 현재가 쌓여 미래가 되어가는 이치를 꿰뚫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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