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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서평

물리학이라고 하면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실험실에서나 쓸 수 있을 뿐, 일상생활에서는 의미없는 과목이라고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물리학에 대한 편견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물리학을 통해 세상 물정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학과 연계한 '사회물리학의 세계', 복잡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계물리학의 아름다움', 물리학자가 보는 세상물정까지..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과 실험에 근거해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 나간다. 

주제들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으로 쉽게 읽혀진다. 
다만, 물리학적인 설명 부분만 제외하고 말이다. 
세부적인 분석이나 실험내용은 가볍게 넘기면서 전체적인 관점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밑줄 긋기

한 사회 안의 모든 의사결정 구조에서 계층을 넘나드는 채널이 많을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군이 바로 눈앞에서 진격해오는데 대응 전략을 결정한다고 며칠씩 토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의사결정 내용보다 의사결정에 이르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결정이 아닐지라도 대응 전략을 빨리 정하는 것이 좋다. 
반면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과 토론이 가능한 구조의 경우에는 최상위층의 결정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도 구성원의 의견 교환을 통해 다른 의견으로 합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물리학자 헬빙의 2000년 논문 주제가 바로 '탈출 상황에서의 공황'에 대한 것이었다. 
논문의 결과 중 내가 특히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출구가 어디인지에 대한 올바른 정보의 중요성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면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런 재난적 상황에서 누군가 출구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이 재난이 발생한 방에서 탈출할 수 있음을 논문의 전산 시뮬레이션 결과는 알려주었다. 

다시 말해 지역감정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투표에 의해 선출되기를 바란 정치인을 위해 조장된 것이다. 
대동소이한 사람을 임의의 기준에 따라 두 집단으로 나눈 뒤 집단 내부 결속을 강화하면서 다른 집단과의 소통을 단절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한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우월하다는 믿음과 상대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여럿 있다. 
국민 통합을 방해하는 자들은 평범한 우리가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차이를 과장해 우리를 또 다른 우리와 구별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이용해 손쉽게 선거에서 선출되기를 바랐던(그리고 여전히 바라는) '그들'이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밴 학생들, 물리학을 문제 풀이를 위한 공식과 공식을 적용하는 요령의 집합으로 배운 학생들은 당장 대학에 진학하면 전혀 다른 상황에 부닥친다. 
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문제를 풀어야 하고, 더 공부해서 대학원에 진학하면 문제가 뭔지 생각해내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현재 사교육 시장에서 가르치는 입시를 위한 과학 교육은 어쩌면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있는 학생으로 하여금 대학에 가기 전부터 이미 물리학을 싫어하게, 문제는 잘 풀어도 자기가 도대체 무슨 문제를 푸는지도 모르게 만든다. 

뭐라도 숫자로 재야 직성이 풀리는 물리학자들은 네트워크에서 노드(연결선에 의해 연결되는 대상들. 도로 네트워크나 고속버스 네트워크에서는 도시나 고속버스 터미널이 노드다)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네트워크에서 노드 각각이 얼마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지를 측정하는 여러 가지 '양'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한 노드가 몇 개의 연결선을 갖는 지를 재는 '연결 중심성(degree centrality)'이다. 
고속버스 네트워크에서는 한 도시를 다른 도시들과 연결하는 버스 노선의 수가 바로 한 도시의 연결 중심성이다. 
서로 친구인 사람들을 연결한 사람 네트워크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친구의 수가 바로 연결 중심성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별것 아니다.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이 바로 연결 중심성이 큰 사람이다. 
다른 방식으로 재는 중심성도 여럿 있다. 
고속버스 네트워크의 임의의 한 도시에서 출발해 도시 A로 오려면 버스를 몇 번 갈아타야 하는지를 측정해 그 평균값이 작으면 A가 '근접 중심성(closeness centrality)'이 크다고 말한다. 
한국의 도시 모두를  다른 도시 모두와 연결하는 고속버스 경로를 구해서 어떤 도시를 가장 많이 거쳐 가는지를 재는 '매개 중심성(betweeness centrality)'이라는 것도 있다. 

'죄수의 딜레마'의 핵심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이 놀랍게도 높은 이익을 주지 못한다"라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이처럼 이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해서 남을 등쳐 먹는 이성적인 판단이 당연히 논리적인 귀결인데도 세상에는 의외로 서로서로 돕고 협조하는 상황이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죄수의 딜레마'라 불리는 게임이다. 
함께 범죄를 저지른 두 용의자(A, B)를 가지고 이 게임을 주로 설명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둘을 따로 따로 격리해놓고 검사가 A, B 각자에게 이야기한다. 
"만약 둘 모두 죄를 자백하면 각각 5년형을 받을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은 자백했는데 다른 사람이 끝까지 안 했다고 우기며느, 자백한 사람은 집에 가고 안 했다고 우긴 사람만 10년형이다. 
둘 모두 끝까지 안 했다고 우기면 증거가 부족하니 검찰로서는 별 수 없이 각자 1년형을 구형한다" 이런 제안을 당신이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리학자가 살펴본 성공적인 주식투자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 없이 주가지수에 연동된 인덱스 펀드에 투자할 것. 이렇게 하면 최소한 평균은 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일반적 펀드에 투자하는 것보다 수익률이 좋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2. 예측하려 하지 말 것. 미래 주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신문 경제면에 실리는 예측 기사는 별자리로 보는 오늘의 운세 정도의 재미로만 읽을 것. 왜? 어치피 잘 안 맞으니까. 
3. 보유 주식 주가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확인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경우에만 주식투자를 시작할 것. 마찬가지로 돈을 빌려 투자하지 말 것.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이 정도 돈은 있으나 없으나 내 미래의 생은 마찬가지라는 금액 정도만 투자할 것. 
4. 가장 중요한 표인트. 20~30년간 망하지 않을 회사 주식을 사서 장기보유할 것. 어떻게 망하지 않을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것은 물리학자인 나는 모르지만 시가총액 상위 기업이 1년 안에 망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는 정도가 힌트가 될 듯. 

100개의 기체 분자들이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도록 충분히 기다린 다음에 스냅사진을 찍어보자. 
아무리 사진을 여러 번 찍어도 기체 분자들이 한쪽에 몰려 있는 사진 한 장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 확률은 1/2의 100제곱이므로 10의 -30승 정도의 확률)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열역학 제2법칙 혹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이 이야기다. 
사실 별것 아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작은 상황에서 큰 상황으로의 변화(한쪽 방에 몰려 있던 분자들이 전체로 퍼지는 변화)는 자연스럽지만, 그 반대(고루 퍼져 있던 분자들이 방의 절반 한쪽에만 모이는 상황으로의 변화)는 부자연스럽다는 이야기다. 

모든 예술 작품은 결국 관계맺음의 문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관계맺음, 그렇게 관계 맺어져 하나의 전체가 된 작품과 그 작품을 보는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 
인상파 화가들의 성공의 절반은 그림을 보는 우리가 만들었다. 
이런 방식의 관계맺음에서 결국 예술가가 하는 일이란 작품과 감상자의 관계맺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맺음의 플랫폼, 즉 '감상자가 참여해 뛰어 놀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그 플랫폼 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보여지고 무엇을 볼지는 우리가 작품 앞에 마주서기 전에는 결정되지 않는다. 

요즘 많은 정부기관과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없는 대량의 자료를 점점 더 공개하고 있다. 
공유된 정보는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추출하고 이를 어떤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 빅브라더의 위험은 피하고 빅데이터의 이득은 취하는 현명한 방법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의미 있는 연구의 기회가 넓혀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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