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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출신의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전작인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지배했는지를 다룬 것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이 "2017 여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빌게이츠의 이야기처럼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기는 하다.
빌게이츠의 블로그에도 이 책에 대한 서평이 올라와 있으니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https://www.gatesnotes.com/Books/Homo-Deus
책의 서문에서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세 번째 천년이 밝아올 무렵 인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 일이지만,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는 데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들은 이제 자연의 불가해하고 통제 불가능한 폭력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다.
이제 어떤 신이나 성자에게 이 문제들에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기아, 역병, 전쟁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대개는 잘 막아낸다."
인류의 새로운 의제
인류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 했다면, 이후에 나타나는 인류의 새로운 의제는 무엇일까?
저자는 불멸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멸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불로장생을 찾아 전 세계를 헤매던 징기스칸이 떠올랐다.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에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불멸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지 생명 연장일 것이다.)
반면에 행복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과거보다 현재가 더 행복할까?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우리의 생활이 더 편리해지면 행복할까?
"두 개의 튼튼한 기둥이 행복의 유리천장을 떠받치고 있는데, 하나는 심리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물학적인 것이다.
심리적 수준에서 보면,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 기대치에 달려있다.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누릴 때 만족하지 않는다.
실제와 기대가 일치할 때 만족한다.
생물학적 수준에서 보면, 기대와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생화확적 조건이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우리는 불쾌한 감각에서 벗어나 유쾌한 감각을 느낄 때 행복하다."
행복을 추구하는데서 마음이나 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이후에 이어진다.
신이 된 인간
"인간이 행복과 불멸을 추구한다는 것은 성능을 업그레이드해 신이 되겠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멸이 신의 특성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노화와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물학적 기질을 신처럼 제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몸에서 죽음과 고통을 기술적으로 제거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몸을 우리가 원하는 거의 모든 방식으로 재설계하고 장기, 감정, 지능을 수많은 방식으로 조작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되겠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으로 설정한 듯 하다.
"인간을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인조인간 만들기), 그리고 비유기체 합성이다.
생명공학은 인간이 유기체로서 지닌 잠재력을 아직 완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통찰에서 출발한다.
사이보그 공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유기체를 비유기적 장치들과 융합할 것이다.
더 과감한 접근방식은 유기적 부분이 전혀 없는, 완전한 비유기적 존재를 설계하는 것이다."
지식의 역설
저자는 인류가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측에서 지식의 역설을 이야기한다.
"반면 인간의 발전 과정은 우리의 예측에 반응한다. 예측이 훌륭할수록 더 많은 반응을 유발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컴퓨터의 성능을 높일수록 사건들은 더 제멋대로, 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다.
지식이 축적될수록 예측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이 경제의 기본법칙들을 해독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일이 일어나면 은행, 정부, 투자자, 고객들이 그 새로운 지식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점할 것이다.
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지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이 행동방식을 바꾸는 즉시 경제이론들은 낡은 것이 된다.
이제 우리는 과거에 경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알 수 있어도, 더 이상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지식의 역설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식이 많이 쌓여가면서 소음도 많이 들어가 정확한 신호를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이트 실버가 쓴 신호와 소음에서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예측에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다른 하나는 정보가 공유되면서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어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A 도로의 교통 혼잡을 예측하면 모든 사람들이 우회도로를 선택해 A 도로가 다시 한산해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유발 하라리가 언급한 지식의 역설도 이 부분인 듯 하다.
미래의 예측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발 하라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의 딜레마에 대한 논의해보자는 시도이며, 미래를 바꿔보자는 제안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서 인류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고 의미를 부여했는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는 주장은 개인적으로 매우 신선했다.
알고리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나 절차를 말한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하나의 알고리즘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동일한 알고리즘이라면 인류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을까?
저자는 먼저 마음과 의식에 집중해 본다.
철학자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자기 자신 외의 다른 존재가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그저 추정만 할 뿐 확실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실험실의 쥐, 자의식을 가진 침팬지, 영리한 말 한스를 통해 동물들도 마음이나 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명확하게 증명해 내지는 못했다고 이야기 한다.
결국 인류가 세계를 정복하게 된 계기는 차우세스쿠의 몰락을 통해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소통하는 능력을 설명하면서 예로 든 행동경제학의 가장 유명한 게임인 최후통첩 게임도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만이 상호주관적 의미망을 엮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법, 힘, 실체, 장소로 이루어진 그물이다.
이런 그물은 인간만이 십자군, 사회주의 혁명, 인권운동을 조직할 수 있게 한다.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세계를 지배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스토리텔러가 되어 허구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허구는 나쁜 것이 아니다. 허구는 꼭 필요하다.
돈, 국가, 기업 같은 허구적 실체에 대한 널리 통용되는 이야기가 없다면 복잡한 인간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똑같은 허구적 규칙들을 모두가 믿지 않으면 축구 경기를 할 수 없고, 허구 없이는 시장과 법원의 이점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이야기가 목표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단지 허구임을 잊을 때 우리는 실제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되며, 그때 우리는 '기업을 위해 많은 돈을 벌려고' 또는 '국익을 보호하려고' 전쟁을 시작한다.
기업, 돈, 국가는 우리의 상상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를 도우라고 그것들을 발명했다. 그런데 왜 그것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희생하는가?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투쟁과 화합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둘 다 진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과학은 힘에 관심이 있고, 종교는 질서에 관심이 있다는 표현도 신선했다.
이어서 근대의 계약(인간이 힘을 가지는 대신 의미를 포기한다)에서 인류를 구원한 인본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중세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식의 공식은 지식 = 성경 x 논리 였다.
어떤 중요한 질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사람들은 성경을 읽고 자신의 논리로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과학혁명은 지식에 대한 사뭇 다른 공식을 제안했다.
그것은 지식 = 경험적 데이터 x 수학이다.
어떤 잘문의 답을 알고 싶으면, 그 질문과 관련한 경험적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인본주의가 여기에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으면서, 윤리적 지식을 획득하는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지식 = 경험 x 감수성이다.
만일 당신이 어떤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한다면, 내면의 경험을 꺼내 예리한 감수성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 지식을 추구하는 우리는 수년간 경험을 쌓고, 그 경험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갈고 닦는다.
전쟁의 진실에서는 먼저 중세의 전쟁을 묘사한 그림을 보여준다. - 장자크 발터의 "브라이텐펠트 전투에 나선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와 피터르 스나여르스의 "바이센베르크 전투" - 이어서 인본주의 시대 전쟁의 참상을 묘사한 그림 - 오토 딕스의 "전쟁"과 토머스 리의 "2,000야드 응시"을 비교한다.
동일한 상황이나 사물을 시대상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이제 새로운 비유기적 알고리즘이라 표현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인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지능이 등장하면 우리 인류는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잃게 될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자아와 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찬물 실험은 적어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폭로한다.
바로 경험하는 자아와 이야기하는 자아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순간순간의 의식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매우 다른 실체인 '이야기하는 자아'의 독단이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느라 쉴 새 없이 바쁘다.
지금까지 높은 지능은 발달한 의식과 항상 짝지어 다녔다.
의식을 가진 존재만이 체스를 두고, 자동차를 몰고, 질병을 진단하고, 테러범을 찾아내는 것 같은 높은 지능을 요하는 일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일들을 인간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비의식적 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모두 패턴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데, 머지않아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인간의 의식보다 패턴 인식을 더 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육체적 정서적, 지적 능력을 가진 초인간이 출현해도 자유주의적 믿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초인간들이 보통의 사피엔스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세기 인간의 거대한 프로젝트(기아, 역병, 전쟁을 극복하는 것)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풍요, 건강, 평화의 보편적 표준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21세기의 새로운 프로젝트(불멸, 행복, 신성을 얻는 것) 역시 포부는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들의 목표는 기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능가하는 것이라서, 새로운 초인간 계급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초인간들은 자유주의의 근본 바탕을 포기하고 보통 인간을 19세기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을 대한 것처럼 대할 것이다.
마음을 조작하는 기술과 마음의 스펙트럼에 대한 우리의 무지 그리고 정부, 군대 기업의 편협한 관심이 합쳐질 때, 우리는 틀림없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우리는 몸과 뇌를 업그레이드하는데는 성공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마음을 잃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인간 중심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 세계관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최근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으로 언급되고 있는 세계관을 데이터교라고 칭한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데이터교는 철학적 혁명에 그치지 않고 실용적인 혁명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데이터 중심 세계관에서도 인류가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세계를 계속 지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저자는 마음과 의식에 집중한 듯 하다.
비유기적인 알고리즘이 똑똑해져서 지능을 높여나가도 마음과 의식을 가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공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알고리즘을 직접 입력해주던 프로그래밍에서 변경되어
수많은 데이터에서 스스로 학습하여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공지능이라고 본다.
즉, 공학적으로보면 인공지능은 우리가 준 데이터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학습해 나가는 것이다.
물론 인간보다 빠른 학습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알파고처럼 세상을 놀랍게 만들기도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마음과 의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쨌든 유발 하라리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기를 바라면서 책을 마친다.
여러분도 한번쯤 생각해 보기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알고리즘은 계산을 하고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일군의 방법론적 단계들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생물학자들은 버튼을 누르고 차를 마시는 사람 역시 알고리즘이라는 확고한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은 자판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알고리즘이지만, 그렇다 해도 알고리즘인 것은 확실하다.
에덴동산 신화에서 인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한 탓에, 그리고 지혜를 얻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탓에 벌을 받는다.
신은 그들을 낙원에서 추방한다.
하지만 울즈소프 정원의 신화에서는 아무도 뉴턴을 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그의 호기심 덕분에 인류는 우주를 더 잘 알게 되고,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기술 낙원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디딘다.
전 세계 수많은 선생님들이 호기심을 가지라며 학생들에게 뉴턴 신화를 들려주는 것은,
우리가 충분한 지식을 갖추기만 하면 이곳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농업혁명이 유신론적 종교를 탄생시킨 반면, 과학혁명은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탄생시켰다.
유신론자들이 '테오스(신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경배하는 반면,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을 경배한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나치즘 같은 인본주의 종교들의 창립이념은 호모 사피엔스는 특별하고 신성한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우주의 모든 의미와 권위가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돌촉을 붙인 창으로 매머드를 사냥하던 인류가 2만 년만에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탐사하게 된 것은 더 능란한 손재주나 더 큰 뇌 덕분이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한쪽에서는 과학과 종교가 앙숙이고 과학적 지식과 종교적 미신 사이의 목숨 건 투쟁이 근대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의 빛이 종교의 어둠을 쫓아버렸고, 세계는 점점 세속적, 이성적이 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일부 과학적 발견들이 종교적 교의를 뿌리째 뒤흔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논리적 필연이 아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과학이 잘 작동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의 도움이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과학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사를 과학과 종교 사이의 투쟁으로 그리는 것은 관례처럼 되어 있다.
종교는 다른 무엇보다 질서에 관심이 있다.
종교의 목표는 사회 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 힘에 관심이 있다.
과학의 목표는 연구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전쟁을 하고 식량을 생산하는 힘을 획득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성직자 개인이 다른 무엇보다 진리를 우선시할 수는 있겠지만, 집단적인 제도로서 과학과 종교는 진리보다 질서와 힘을 우선시한다.
그러므로 이 둘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
근대성은 일종의 계약이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태어나는 날 이 계약에 서명하고, 죽는 날까지 이 계약의 통제를 받는다.
근대 계약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근대사회를 붕괴에서 구했을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수요공급의 법칙인 자본주의가 아니라 새롭게 떠오른 혁명적 종교인 인본주의였다.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지를 발견한 것이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새 지식을 찾아나설 매우 타당한 이유가 생겼고, 이것은 진보를 향해가는 과학의 길을 열었다.
우리는 나노기술, 유전공학, 인공지능이 다시 한 번 생산혁명을 일으켜, 영원히 팽창하는 초대형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들을 개척할 거라고 믿는다.
근대 계약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힘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계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묘한 면책조항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든 그 우주적 계획에 바탕을 두지 않고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계약 위반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사회를 구원한 것은 이 면책조항이었다.
의미없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는 그 어느때보다 막강한 힘을 가졌을 뿐 아니라, 모든 예상을 뒤엎고 신의 죽음이 사회붕괴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21세기에 인간이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거라는 예측으로 시작했다.
이 예측은 그리 독창적인 것도 대단한 선견지명도 아니다.
그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전통적 이상들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인본주의가 인간의 생명, 감정, 욕망을 신성시한 지 오래되었음을 고려하면, 인본주의 문명이 앞으로 인간의 수명, 행복, 힘을 극대화하려 할 거라는 점은 불 보듯 훤하다.
1869년부터 1909년까지 하버드 대학교 학장을 지낸 찰스 W. 앨리엇은 1917년 8월 5일자 <뉴욕타임스>에 "귀족들이 조직하고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군대보다 민주적인 군대가 더 잘 싸우"고 "민중이 입법을 결정하고 공무원을 선출하고 평화와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는 나라들의 군대가 생득권과 절대자의 위임에 의해 통치되는 전제군주의 군대보다 잘 싸운다"라고 썼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인류 종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해도 마음의 스펙트럼을 완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아마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을 할 것이다.
예컨대 박쥐는 반향정위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데이터 흐름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사생활, 자율, 개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상관없다.
데이터교 혁명은 100~200년까지는 아니라도 몇십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인본주의 혁명도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데이터교도들은 만물인터넷이 신성한 이유는 인간이 스스로 필요를 위해 그것을 창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만물인터넷은 그 자체로 신성해질 것이다.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의 이동은 그저 철학적인 혁명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용적인 혁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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