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심하면 화를 내기도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소크라테스적 능력이 아닐까 한다. 바로 질문이다.
잘못된 선택은 감정적 동요를 부른다. 따라서 인간은 합리적 쾌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흐른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소크라테스가 권하는 삶에 질문을 던지는 기술
1950년대에 인지행동치료를 개발한 앨버트 앨리스는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인간은 현상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안해진다."
앨리스는 이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인지행동치료의 핵심인 '감정의 ABC 모델'을 개발했다.
즉, 우리는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A), 그것을 해석하며(B), 그 해석에 따라 감정반응을 일으킨다(C).
앨리스는 스토아학파의 견해대로 인간은 사건에 대한 생각이나 의견을 바꿈으로서 감정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사람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게 놔둬야 한다고 주장한 뒤로,
사회 전체를 '좋은 삶'이라는 하나의 철학이나 종교에 예속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완강한 저항을 받아왔다.
전후 자유주의철학의 양대 거물인 카를 포퍼와 이사야 벌린 역시 좋은 삶을 위한 하나의 공식을 찾는 것은 "형이상학적으로 불가능한 희망"이라고 경고했다.
한 국가의 국민 전부가 행복에 대한 한 가지 모델에 모두 뜻을 함께할 리 만무하고,
정부가 국민에게 한 가지 철학을 강요하려 한다면 강압적이고 독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사야 벌린은 정부가 국민의 '소극적 자유', 즉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보호하고,
'적극적 자유', 즉 각자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성취를 추구할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좋은 삶'이라는 개념, 사람들이 질문할 권리,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할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적이고 다원론적인 정치 사이에서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행복의 정치학은 간섭을 일삼고 자유를 제한하며 관료적이 될 것이고,
결국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람들을 철학이라는 우물로 이끌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 에픽테토스가 권하는 내 영혼의 주인으로 사는 기술
론다 코넘(걸프전 당시 이라크 포로)의 감정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겁에 질려 있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훨씬 낫다는 인식을 따른 것이다.
"강한 회복탄력성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문제점을 뛰어넘어야 할 과제로 바라보죠.
역경을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나는 그런 능력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죠.
그 뒤로 우리가 배운 사실은, 회복탄력성을 이끌어내는 사고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우리의 몸, 우리의 재산, 우리의 명성, 우리의 직업, 우리의 부모, 우리의 친구들, 우리의 동료들, 우리의 상사, 날씨, 경제, 과거, 미래, 우리가 죽을 거라는 사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믿음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두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에 수많은 고통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첫째, 우리는 제2 영역에 있는 것을 통제하려 든다.
그러나 이 영역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화가 나거나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진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제1 영역, 즉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의 생각을 외부세계, 즉 부모, 친구, 연인, 상사, 경제, 환경, 계급제도 탓으로 돌리고,
다시 한번 괴로워하고 무력감을 느끼고 자제력을 잃고 외부 상황에 휘둘린다.
많은 정신질환과 정서장애가 이 두 가지 치명적인 실수에서 비롯된다.
-- 무소니우스 루푸스가 권하는 흔들리지 않게 단련하는 기술
스토아철학을 배우는 학생이 자신이 걸핏하면 화를 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하루 종일 자신을 주시하고,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날 화냈던 일을 일기에 기록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나아지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꾸 화를 내는 습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화내지 않았던 날들을 세어보아라.
'전에는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틀에 한 번 정도 화를 냈고, 그 다음에는 사흘에 한 번,
그 다음에는 나흘에 한 번 화를 냈다' 식으로."
나쁜 습관을 행하지 않은 날을 셈으로써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다질 수 있고,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발전상이 눈에 띄고 정량화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계속 노력할 용기가 생긴다.
담배를 끊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이 방법을 사용했다.
자신에 대해 기록하는 운동은 고대철학과 현대기술의 흥미로운 결합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은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동료들에게 평생에 걸쳐서 자신의 체질을 연구하고, 어떤 음식이나 음료, 또는 어떤 종류의 운동이 자기 몸에 좋은지를 알아내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에 좋은 게 뭔지 어떤 의사보다도 더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신이 레슬링 선수의 트레이너처럼 당신을 거친 젊은이와 붙여놓았다고 생각하라.
'무슨 목적으로?'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올림픽 챔피언이 될지도 모를 일 아닌가?"
-- 세네카가 권하는 마음속 기대치를 조절하는 기술
세네카는 "철학은 영혼을 형성하고 구성한다.
삶에 질서를 부여하고, 우리의 행동을 이끌며,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하지 않고 그냥 두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매시간 일어나는 수많은 일에는 조언이 필요하다.
그런 조언은 철학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시인 앨리엇은 세네카의 스토아철학이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훌륭한 대사들 중 일부에서는 세네카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네카는 화를 다스리는 단기적 방법과 장기적 방법을 제안했다.
단기적 방법 중 첫 번째는 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특히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게 무엇인지 기록하라.
모든 사람이 같은 지점에서 상처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 부분을 보호할 수 있다"
두 번쨰로, 울화통이 치밀면 전문가들의 표현대로 '타임아웃'을 가져야 한다.
세네카는 이렇게 썼다.
"화를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면서 치밀었던 화를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인상을 쓰기보다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표정을 편안하게 만들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발걸음은 침착하게 하라.
그러면 그런 외적인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내면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없애야 하는 핵심적인 습관적 믿음 중 하나가 '화를 내는 것은 적절하다'라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것은 좋다'라는 믿음이다.
화를 내는 것이 남자답고 용감하며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화를 철저하게 조사해 화가 정말로 어떤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화는 어떤 모습인가?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화의 폭발은 매력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몹시 해롭다.
그런 화는 우리의 관계에, 우정에, 가정생활에, 일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해를 입힌다.
세네카는 화로 이어지는 가장 큰 오류는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가 화를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 그 치유법은 기대를 낮추어 좀 더 현실에 맞추도록 노력해서
이 세상에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
-- 에피쿠로스가 권하는 지금 여기, 삶을 즐기는 기술
합리적 쾌락주의에는 어떤 비판들이 있을까?
우선,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생각하고 집착하다 보면 어떤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낸 것처럼 역설적으로 덜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이로제에 걸릴 수도 있다.
둘째, '행복을 위한 행동'은 행복이 주로 개인의 기질에 달린 문제인데도, 그것을 도덕이라는 받침대에 올려놓는다.
그런 철학은 우울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우울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 나머지 자신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느끼게 만들 위험이 있다.
-- 헤라클레이토스가 권하는 조망하며 사색하는 기술
헤라클레이토스가 우리에게 남긴 우주상은 매우 역동적이다.
그 속에서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은 끝없이 변화한다.
이것은 피타고라스나 플라톤 같은 다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된다.
그들은 우주가 완벽하게 조화로우며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의식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철학자들이 옳았으며,
인간의 의식은 단지 생존과 번식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주에 대해 숙고하고 그 진실을 찾아내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이 있는 우주가 의도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로저 펜로즈가 주장하는 '인류 원리'와 비슷하다.
펜로즈는 인간은 영원한 수학법칙들이 이끄는 '플라톤적 우주'에 살고 있으며, 그 법칙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을 지녔다고 말한다.
-- 피타고라스가 권하는 기억하고 매혹시키는 기술
스톡데일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고대 그리스 철학을 만났다.
그는 고대인들의 "태도를 형성하는 말"을 많이 기억했는데, 그 말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에픽테토스의 "편람"의 "우리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첫 문장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지만, 자신의 성격, 존엄성, 자존감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스톡데일은 철학자들의 금언을 외우고 소화한 덕분에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공포나 수치심, 죄책감에 무너지지 않았다.
피타고라스에게 철학이란 암기하고 되풀이하고 노래해서 우리의 살과 피와 신경계 속에 로고스의 마법 같은 말들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생각을 통해 우리가 자기 몸을 절대적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고대인들이 몇 세기 전에 보여준 것처럼 생각(또는 암시)이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치유할 수도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에게 자기암시의 원칙을 가르쳤다.
고대인들은 어떤 구절이나 공식의 반복이 지닌 힘(대개의 경우 무시무시한 힘)을 잘 알았다.
그들이 고대 경전을 통해 보여준 부인할 수 없는 영향력의 비밀은 아마도, 아니 분명히 암시에 있었다.
철학은 내면의 힘과 자제력을 키워줄 수 있지만,
바깥세상의 온갖 곡절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마법 같은 말들을 반복함으로써 모든 역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의 암기와 주문 기법에는 상식과 심리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그는 먼 뒷날 인지행동치료가 입증해낸 사실, 즉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듣고 흡수한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냈다.
-- 회의론자들이 권하는 제대로 의심하고 비판하는 기술
모든 인간은 신중한 회의론을 이용해 자신의 정서적 믿음들을 극복할 수 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정말이야? 확실해? 증거 있어?'
인지행동치료에 따르면, 정서장애는 대개 이 세상을 독단적으로 해석한 내용을 지나치게 믿는 데서 발생한다.
우울증 환자는 모든 게 잘못될 거라고 확신한다.
사회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융통성 없는 독단에 의문을 제기하고, 경험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의 회의론은 과학을 믿는다.
잡지 "스캡틱'을 창간한 마이클 셔머는 이렇게 말했다.
"회의론은 과학이에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죠.
의심하는 데서 시작해서 시험해볼 증거를 찾아요.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시험하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들죠"
그런데 모든 긍정적인 것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회의론자들의 마음속에서는 과학의 숭고한 힘과 종교의 불합리하고 파괴적인 힘이 '제로섬 전쟁'을 치른다.
-- 디오게네스가 권하는 남의 시선과 권위에 저항하는 기술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쓸데없이 뼈 빠지게 일하는 대신 사람들은 본성이 권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은 너무 어리석어서 스스로 불행한 길을 택한다."
왜 우리는 스스로 불행한 길을 택할까?
문명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인간이 문명으로 수치심을 지나치게 정제한 나머지, 남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전전 긍긍하는 소외된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실패자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최대한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느라 평생을 바친다.
경제학자 팀 잭슨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오래 남지도 않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없는 돈을 들여서 산다"
-- 플라톤이 권하는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기술
소크라테스의 어린 제자였던 플라톤은 세속적이고 진보적인 혁명을 공포에 휩싸인 채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신비주의 철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피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플라톤도 기하학, 논리, 음악을 공부하면 변화하는 물질적 현실 뒤에 숨은 영원한 진리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충분히 계몽되고 충분한 훈련과 교육을 받으면 그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은 또 다른 위대한 스승인 소크라테스에게서 변증법을 배웠고, 대화를 통해서 자유, 미, 정의 같은 도덕적 용어들의 더 타당하고 포괄적인 정의를 찾는 법을 익혔다.
플라톤은 2 더하기 2는 항상 4가 되는 수학적 진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하듯, 변증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진실, 미, 정의 같은 도덕적 가치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인간의 심리를 정교하게 설명했는데, 이는 많은 현대 심리학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우선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몇 개의 자아를 갖고 있다고 했다.
정신은 서로 다른 경쟁적 시스템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 시스템에는 고유의 안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 부분으로 된 구조를 제안했다.
합리적이고 사색적인 시스템, 감정과 관련한 시스템, 육체적 욕구를 관장하는 기본 시스템이 그것이다.
플라톤이 주장했던 것, 그리고 신경과학자들과 인지심리학자들이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정신에서 합리적 시스템, 즉 '신포유류적' 시스템을 단련하여 다른 시스템들보다 우위에 두면 좀 더 합리적이고 지적이며 장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단순한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고 싶거나 디저트를 조금 더 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학파와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의식적인 이성을 이용해서 충동을 억누르는 연습을 할 때마다 이성의 지배를 강화활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몇몇 학자는 플라톤의 "국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전체주의의 본보기로 보이는 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20세기의 전체주의 국가들에서처럼 플라톤의 국가에서 개인의 삶은 제거되고 없다.
"국가"에서 국가는 국민을 전면적으로, 즉 삶의 모든 면을 재교육한다.
"국가"에서는 그런 지식인의 현대 버전인 지식인 혁명가의 소름끼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사회를 만들어가면서 사람들의 호소에는 귀를 닫는 모습 말이다.
-- 플루타르코스가 권하는 내 인생의 영웅을 찾는 기술
플루타르코스는 내면에 있는 격정을 완전히 뿌리 뽑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스토아학파의 신조에 반대했다.
그 대신 우리의 격정을 뿌리 뽑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다"는 플라톤의 뜻을 따르면서 "격정이 도를 넘지 않게 하고, 질서를 지키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서 미덕을 함야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미덕은 "격정을 잘 다스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 주어서 그들의 격정을 '좋은 목적'으로 이끄는 것이 교육이 할 일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품성이란 오랫동안 지속되는 습관이다.
우리 인간은 이성, 격정, 습관의 조합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들 대다수는 이성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습관을 바꿀 수 있다.
젊은이들은 특히 더 그렇다."
젊음은 외부의 영향을 쉽게 받고 유연하며, 그만큼 가르침이 깊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에게 깊이 영향을 받은 마키아밸리는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의식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통치자 교육에 아주 중요하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나중에 통치자가 될 사람이 지적 능력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역사책을 읽고 거기 등장하는 인물의 행동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전쟁 중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보고, 그들이 승리하거나 패배한 이유가 무엇인지 관찰해서 뒷날 전쟁에 나가 패배를 피하고 승리를 모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인물처럼 행동해야 한다.
자기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 중 유명했고 사람들에게 칭송받았던 사람을 본보기로 삼아 그 사람이 이룬 것과 그 사람의 행동을 늘 명심해야 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킬레우스를,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스키피오가 키로스 2세를 모방했던 것처럼.
현대인의 눈에 지난날의 위대한 군사영웅들은 전범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
좀 더 최근 들어서 필립 짐바르도 같은 상황심리학자들은 '좋은 품성'이나 '나쁜 품성' 같은 건 없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행동은 상황에 좌우된다는 얘기다.
짐바르도는 이것을 1971년에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라는 유명한 실험으로 입증했다.
그는 24명의 건강한 남자 지원자들을 모아서 그중 12명에게는 '교도관' 역할을, 나머지 12명에게는 '수감자' 역할을 시켰다.
짐바르도와 동료들은 실험환경을 되도록 사실적으로 만들어 지원자들이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자 했다.
그 실험은 2주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며칠 뒤에 중단해야만 했다.
교도관 역할을 한 지원자들이 지나치게 가학적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수감자 역할을 한 지원자 몇몇이 정서적으로 충격과 상처를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피험자들이 그 상황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것이다.
진짜 감옥이 아니라 스탠퍼드대학교 한가운데서 말이다.
그 실험은 플루타르코스의 '품성'이라는 개념을 약화시키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짐바르도는 인간의 품성이 위대한 인물들의 삶에 대해 읽고 모방함으로써 강화될 수 있다는 플루타르코스적 생각으로 더 다가선 듯 하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권하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본성에 관한 생물학적 이론에 기초해 윤리학을 정립했다.
즉, 그는 인간의 정신은 합리적인 요소와 불합리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본질적으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정신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좋은 삶'이란 이런 본성을 충족시켜서 행복과 성취로 이끄는 삶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비전은 목적론적이다.
즉,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설계되며, 그 목적을 달성할 때 선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 본성이 만들어진 의도를 만족시킬 때 좋은 삶을 이룬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합리성을 이용하여 불합리한 정신을 완전히 무찌르고 열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스승 플라톤에 좀 더 가깝게 생각했다.
그는 인간이 이성을 이용해 감정을 좋은 습관 쪽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플라톤과 달리 인간이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형태가 변하지 않는 미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분별력을 이용하여 끝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행복은 에피쿠로스학파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지 기분이 좋거나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진정한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라고 했는데, 이는 인간 본성에서 가장 고결하고 가장 좋은 것을 성취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말한다.
그는 "행복이란 영혼의 활동이 미덕과 부합하는 것"이며, 그런 최고의 행복을 조국이나 신같이 "더 높은 명분"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데서 찾을수도 있다고 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기에 좋은 삶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이 있다.
스토아철학에서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좋은 삶을 같이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추구하는 데 최고로 좋은 구조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민주사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클럽, 협회, 네트워크, 공동체 등을 만들게 해주고, 그것들을 통해 사람들은 철학을 행하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생각하고 모두가 참여해서 찾아내는 해결책은 소수만이 참여하는 독재사회의 해결책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벌린은 국가는 국민의 '소극적 자유',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각자가 '적극적 자유', 즉 좋은 삶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추구하게 놔둬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부가 초중고등학교나 대학교, 또는 성인 교육기관에서 '좋은 삶'에 대해 가르치고 싶다면, 다양한 윤리적 접근법들을 하나의 그릇에 쏟아붓고 휘저어서 차이점이나 특징이 전부 사라지게 만들지 말고, 그 접근법들을 각각 가르치고, 그 차이점과 논쟁점을 강조할 것을 제안한다.
좋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법을 사람들이 직접 검토하고 실험하고 혁신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소망하는 것은 좋은 삶에 대한 고대의 개념과 현대의 다원적이고 자유민주적인 정치 사이에서 더 적절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가 권하는 잘 떠나는 기술
그들은 외적인 것들을 붙잡으려 하기보다는 내면의 영혼을 믿으라고 강조했다.
몽테뉴의 말을 인용해보자.
"우리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런데도 남에게 얻고 애걸하라고 배운다.
그러나 평온하게 사는 데 원칙 같은 것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우리 내면에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찾는 방법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