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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독서

사피엔스

루키~ 2021. 8. 30. 08:17

미니서평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다룬다. 
각 분야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그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이러한 스타일의 책들이 최근 인기가 많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총균쇠',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런 책은 어렵기도 하지만 저자들의 명석한 분석을 따라가다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사피엔스'의 문제의식은 왜 사피엔스 종만이 지구상에 살아남았나? 인간은 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문명은 왜 발전하였고, 이런 발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는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발하라리는 이에 대해 먼저 '인지혁명'을 이야기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이었던 사피엔스가 튼튼하고 머리가 좋으며 추위에 잘 견뎠던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을 제치게 된 성공비결을 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라고 말한다. 
언어의 유연성, 뒷담화 이론, 가상의 실재를 상상하는 능력, 낯선 사람들끼리 협력...
인지혁명으로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졌고,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라고 한다. 

두번째 이야기인 '농업혁명'은 약간 충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농업혁명으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축적된 식량과 여가 시간으로 국가가 발전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유발하라리는 반대로 이야기한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는 것이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리고 제국을 지탱할 수 있었던 신화, 즉 상상속의 질서를 언급할 때 예로 들었던 기원전 1776년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시기적인 측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세번째로 인간사회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창조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인류의 통합'을 다룬다. 
인류의 통합은 "화폐", "제국", "종교"의 세가지 질서를 믿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세 후보 중 하나를 믿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었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다만, 제국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인도라는 현대 국가는 대영제국의 자식이다"라는 영국이 인도를 발전시켰다는 논리는 일본의 주장과 비슷해 불편했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물론 역사상의 선인과 악당, 즉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 같았지만 굳이 영국이 아니었어도 인도는 현대 국가로 더 빠르고 더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유의 마지막으로 '과학혁명'을 이야기한다.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전을 야기하고, 핵무기의 개발이 평화주의를 육성하는 등 역설적이지만 들어보면 수긍이 되는 주장을 한다. 

근대 문화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다. 그런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결합하자, 사람들은 결국 진정한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르다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학이 풀기 힘들었던 문제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하자, 인류는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적용함으로써 어떤 문제든 다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난, 질병, 노화, 죽음은 인류의 피치못할 운명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무지가 낳은 결과였다.
핵무기에 의한 대량학살 위협은 평화주의를 육성한다. 
평화주의가 퍼지면 전쟁이 물러가고 무역이 번창한다.
무역은 평화의 수익과 전쟁의 비용을 모두 늘린다. 

과학은 제국과 자본주의와 결합해 끊임없이 발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까?
책에서 논의하는대로 행복에 대해서는 생물학적, 물질적 행복 이외에 정신적, 사회적, 윤리적 부분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밑줄긋기

--제1부 인지혁명
인지혁명에 뒤이어 뒷담화이론이 등장한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뒷담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들이 농업 및 산업 사회 사람 대다수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삶은 거칠고 힘든 것이었다. 

--제2부 농업혁명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신화는 어떻게 해서 제국 전체를 지탱할 수 있었을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 개를 살펴보자. 
하나는 기원전 1776년경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매뉴얼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미국인 수억 명의 협력 매뉴얼로 기능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만일 흑인과 백인의 구분, 브라만과 수드라의 구분이 생물학적 실체에 근거를 두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생물학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각기 다른 집단이 지니는 생물학적 차이는 사실상 무시할 만한 수준이므로, 생물학으로는 인도 사회의 곡절이나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상상의 산물을 잔인하고 매우 현실적인 사회구조로 바꿔놓은 사건들, 조건들, 권력관계들을 연구해야만 비로소 그런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제3부 인류의 통합
화폐는 주화와 지폐가 아니다. 화폐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끔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 목적은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데 있다.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과 전혀 다르며, 그들에게 빚진 것은 전혀 없다. 

우리 눈앞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은 특정 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전 세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업가, 엔지니어, 학자, 법률가, 경영인이 이 제국에 동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일신론은 질서를 설명하지만 악 앞에서 쩔쩔맨다. 이신론은 악을 설명하지만 질서 앞에서 당황한다.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논리적 방법이 하나 있다. 온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유일신이 있는데 그 신이 악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신앙을 가질 배짱이 있는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었다. 

고타마는 다음과 같이 통찰했다.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고타마는 자신의 가르침을 한 가지 법칙으로 요약했다. 
번뇌는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것,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있다는 것,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를 서술하는 것과 '왜'를 설명하는 것은 뭐가 다를까?
'왜'를 설명한다는 것은 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필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제4부 과학혁명
과학과 산업과 군사기술은 자본주의 체제와 산업혁명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서로 얽히기 시작했고, 일단 그 관계가 정립되자 세상은 급속히 변했다. 

인종차별 이론은 수십년간 명성과 존경을 얻었지만, 이제는 과학자와 정치인 모두에게 극단적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요즘도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상대로 영웅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전장이 이미 옮겨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문화주의'란 말은 없지만, 이제 만들어낼 때가 되었다. 
오늘날 엘리트들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서로 대조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때 이것을 문화 간의 역사적 차이라고 말하지, 인종간의 생물학적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은행들은 자신들이 가진 1달러당 10달러를 빌려주는 것이 허용된다.
그 말은 우리의 은행계좌에 있는 모든 예금의 90퍼센트는 이에 대응하는 실제 화폐가 없다는 뜻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정확히 어떻게 금융제도의 신뢰를 얻었을까?
첫째, 이들은 기일에 맞춰 전액을 반드시 갚았다. 그래서 대부업자들에게 신용을 얻었다. 
둘째, 사법제도가 독립되어 있는 데다 사적 권리, 그중에서도 사유재산권을 보호했다. 
자본은 민간인들의 재산을 보호해주지 않는 독재국가에서 새어나와 법치와 사유재산권이 있는 국가로 흘러들어갔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이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옥에 티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이윤이 공정한 방식으로 얻어지거나 공정한 방식으로 분배되도록 보장하지 못한다. 
그러기는커녕, 이윤과 생산량을 늘리려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성장이 최고의 선이 되고 다른 윤리적 고려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성장은 쉽사리 파국으로 치닫는다. 

경제성장에는 에너지와 원자재가 필요한데 이는 유한하다.
만일 이것들이 고갈되는 때가 온다면, 전체 시스템은 붕괴할 것이다.
우리의 직관과는 반대로,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의 에너지와 원자재 사용량은 급격히 늘었지만 이용 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의 양도 늘어났다. 
둘 중 하나가 부족해서 경제성장이 느려질 위험이 생기면 그때마다 과학적, 기술적 연구에 투자가 흘러 들어갔다. 
그러면 예외 없이 기존 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와 원자재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엔느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조립 라인과 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도 시간표가 왕이 되었다. 
공장의 교대 근무시간이 오후 5시에 끝난다면 동네 술집은 5시 2분에 문을 여느 것이 나았다.

철학자, 사제, 시인들이 행복의 본질을 수천 년간 곰곰이 생각해온 결과, 그들은 우리의 사회적, 윤리적, 정신적 요인들도 물질적 조건만큼이나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지었다. 
어쩌면 현대의 풍요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번영에도 불구하고 소외와 무의미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의 생물학자들은 도처에서 지적설계(창조론) 운동과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는 일이 진행 중일 수 있다.
그 방법은 세 가지인데 첫째가 생명공학, 둘재가 사이보그 공학(사이보그는 유기물과 무기물을 하나로 결합시킨 존재다), 셋째가 비유기물공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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